•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천병희 번역본(개정판)

    오뒷세이아 앞 표지


    지금 영화관에서는 《오디세이》의 인기가 뜨겁습니다.

    최근 《오디세이》가 영화로 제작되었다는 소식에 반가웠습니다. 얼마 전에 개정판으로 《오뒷세이아》를 다시 다 읽은 직후였기에 영화로도 만나게 되어 더 기뻤습니다. 이 대서사시가 어떻게 영화로 옮겨졌을지 기대 반 걱정 반이었습니다. 역시나, 줄거리를 이미 알고 보는 영화는 흥미진진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배우들의 연기에 집중할 수 있었고,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읽은 《오뒷세이아》는 개정판으로 약 675쪽에 달하는 상당히 무거운 책입니다. 읽는 내내 책의 무게에 압도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책을 받아 보니 개정판답게 산뜻한 하늘색 표지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천병희 번역의 가치

    국내에서 《오뒷세이아》의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이 처음 나온 것은 1996년입니다. 그 번역을 맡았던 분이 바로 천병희 교수입니다. 독문학을 전공하고 독일에서 고전문학을 수학한 그는 평생에 걸쳐 그리스·로마 고전을 원전에서 한국어로 옮기는 일에 매진했습니다.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비롯해 아이스퀼로스·소포클레스·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전집,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플라톤 전집,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요 저작, 헤로도토스와 투퀴디데스의 역사서 등 방대한 작품을 번역했습니다. 한국어로 읽는 서양 고전 번역의 토대를 사실상 혼자서 구축한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천병희 번역의 가장 큰 특징은 ‘가독성’과 ‘충실함’의 균형입니다. 지나치게 직역하여 읽기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원문의 의미와 분위기를 최대한 살렸습니다. 2015년에 나온 이 개정판은 1996년 초판 이후 변화된 언어 감각에 맞춰 어색한 표현들을 다듬고 문장을 부드럽게 손본 결과물입니다. 옮긴이 스스로 “호메로스의 작품이 한두 해 있다가 사라질 것이 아님은 분명한데, 그렇다면 ‘원전 번역’이란 타이틀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읽고자 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그 세계에 빠져들어 재미를 맛보며 읽을 수 있는 원전 번역이어야 한다”는 소명감을 가지고 작업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책 말미에는 상세한 주석과 해설, 주요 인명·신명·지명 정리, 가계도, 참고문헌 등이 실려 있어 초심자도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총 24권으로 구성된 방대한 분량(약 675쪽)이지만 한 권으로 완결되어 있어 읽기의 흐름이 끊기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호메로스와 《오뒷세이아》가 가지는 의미

    호메로스는 기원전 8세기경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입니다.
    그의 실존 여부와 《일리아스》, 《오뒷세이아》가 한 사람의 작품인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지만, 이 두 서사시가 서양 문학·사상·문화의 원형을 형성했다는 사실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플라톤은 그를 “그리스의 스승”이라 불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호메로스를 “시인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장 먼저, 가장 잘 안 시인”으로 평가했습니다.

    《오뒷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오뒷세우스가 고향 이타케로 돌아가는 10년의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단순한 모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란 무엇인가, 고향과 가족이란 무엇인가, 신과 운명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키클롭스, 키르케, 칼륍소, 세이렌, 스킬라와 카립디스 같은 유명한 에피소드들이 등장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결국 ‘귀향’과 ‘정체성 회복’에 있습니다.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가 기다리는 집, 그리고 그 집을 지키기 위한 오뒷세우스의 지혜와 인내, 때로는 잔혹하기까지 한 결단이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입니다.

    이 작품은 이후 수많은 문학·예술·철학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오디세이’라는 말 자체가 길고 험난한 여정을 뜻하는 보통명사가 되었을 정도입니다. 이번에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도 이 책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듯합니다.

    왜 지금 《오뒷세이아》를 읽어야 하는가


    표지의 삽화 역시 인상적입니다.

    고대 그리스 도자기 그림을 연상시키는 선으로 그려진 배와 인물들이 작품의 분위기와 잘 어울립니다. 개정판이라는 표시가 있는 이 판본은 디자인과 제본 상태도 단정해서 소장용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입체적인 서사 구조

    이 책은 단순히 시간 순서대로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습니다. 아들 텔레마코스가 아버지를 찾으러 떠나는 이야기로 시작하여, 중간에 오뒷세우스가 지나온 회상 장면이 배치되는 등 현대 소설 못지않은 치밀하고 입체적인 구성을 자랑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읽기보다는, 하루에 한두 권씩 천천히 읽어 나가기를 권합니다. 텔레마코스의 여정(1~4권), 오뒷세우스의 모험담(5~12권), 귀향과 복수(13~24권)로 크게 나누어 읽으면 구조가 더 잘 보입니다. 해설을 먼저 읽고 본문으로 들어가도 좋고, 본문을 다 읽은 뒤 해설을 다시 보며 정리해도 좋습니다. 특히 영웅들의 가계도는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전 입문자, 서양 문학의 뿌리를 알고 싶은 사람, 신화와 모험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 그리고 ‘좋은 문장’을 천천히 음미하고 싶은 독자 모두에게 추천합니다. 특히 번역의 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천병희라는 번역가의 세계를 경험해 보길 바랍니다.

    이름 앞의 고유 형용사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는 등장인물의 이름 앞에 성격이나 특징을 나타내는 형용사를 반복해서 붙이는 ‘고유 형용사(정형 수식어)’ 기법이 자주 사용됩니다.

    “임기응변에 능한 오뒷세우스”

    “참을성 많은 고귀한 오뒷세우스”

    “사려 깊은 페넬로페”

    “슬기로운 텔레마코스”

    “신들의 사자인 아르고스의 살해자 헤르메스”


    특히, 마음에 들었던 수식어는 “이른 아침에 태어난 장밋빛 손가락을 가진 새벽의 여신”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발이 빠른 아킬레우스”, “구름을 모으는 제우스” 등 인물마다 고유하게 지정된 형용사들이 작품 전반에 걸쳐 리듬감 있게 반복됩니다.

    《오뒷세이아》는 단순히 오래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인간이 고향을 그리워하고, 자신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결국 돌아와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그 여정을 천병희의 번역으로 따라가 보는 일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치 있는 독서 경험이 될 것입니다.
    책장에 이 하늘색 책을 꽂아 두고, 가끔씩 꺼내 읽어 보기를 권합니다. 긴 여정을 마친 오뒷세우스처럼, 읽는 이에게도 어떤 ‘귀향’의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책 뒷표지


    모험을 노래하라,
    인간의 호기심과 유혹을 노래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