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수린 작가의 『눈부신 안부』
일하는 곳 한곳에 꽂혀 있는 파란색 표지가 눈에 들어와 꺼내 보게 된 책이다.
한가할 때마다 조금씩 읽었던 책을 이제야 겨우 다 읽었다.
1월부터 시작해 책의 반을 읽는 데 두 달이 걸리고 방치하고 있다가 지난 주말 문득
‘저 책을 이제는 다 읽고 놓아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기 시작하니 금방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다 읽어 버렸다.
처음엔 단순히 누군가의 첫사랑을 찾아주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상처와 상실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이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연결되고,
파독 간호사들의 역사적 삶과 개인의 기억이 아름답게 교차하는 따뜻한 성장·치유 소설이다.
[ 주요 줄거리 ]
어린 시절의 상처와 이별
주인공 ‘해미’는 어린 시절 가스 누출 사고로 언니 ‘해나’를 잃는 비극을 겪는다. 이 사고로 집안은 해체 위기에 처하고, 해미는 독일 파독 간호사 출신인 이모 ‘선자’가 있는 독일의 작은 도시 ‘보훔’으로 보내진다.
보훔에서의 만남과 연대
독일에서 해미는 이모의 파독 간호사 동료들이자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한국인 여성들(‘한수 이모’, ‘은숙 이모’ 등)과 인연을 맺는다. 또한, 또래 친구인 레나와 한수를 만나 함께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찾는 특별한 시간을 보내면서 낯선 독일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 간다. 이러한 만남과 관계 속에서 해미는 상실의 아픔을 조금씩 치유하고 타인의 따뜻한 마음을 경험하게 된다.
편지와 비밀의 추적
보훔에서 지내는 동안 해미는 타국 땅에서 외로움과 고단함을 견뎌내야 했던 파독 간호사 이모들의 깊은 속내를 비로소 마주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해미는 이모들이 한때 가슴 품었던 아련한 사랑과 세월에 묻힌 과거의 이야기들, 그리고 차마 고국으로 보내지 못한 채 오랫동안 간직해 온 오랜 편지들의 존재를 접하게 됩니다. 켜켜이 쌓인 편지 속에 담긴 그리움과 비밀의 흔적들을 하나씩 짚어가는 동안, 해미는 이모들의 삶에 깊이 새겨진 상처를 이해함과 동시에 자기 자신의 아픔 또한 조금씩 보듬어 안기 시작합니다.
시간을 넘어선 회복과 안부
어른이 된 해미는 세월이 흐른 뒤 보훔 시절의 기억과 파독 간호사 이모들이 간직했던 삶의 흔적들을 다시 추적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과거의 상처를 비로소 똑바로 직시하게 되고, 잊고 지냈던 타인들의 안부를 확인하며 스스로의 삶을 치유하게 된다.
[ 아주 담담하게 풀어 놓은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 ]
파독 간호사의 기억과 여성들의 연대
1960~70년대라는 시대적 격랑 속에서 낯선 타국 땅으로 떠나야만 했던 파독 간호사 여성들의 고단한 노동과 삶을 깊이 있게 담아내고 있다. 나아가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이방인으로서의 외로움 속에서도 서로의 기댈 곳이 되어주며 상처를 보듬었던 굳건한 여성들의 따뜻한 연대를 감성적인 시선으로 조명하고 있다.
상실과 애도
갑작스러운 사고나 이별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 그리고 홀로 남겨졌다는 깊은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어루만진다. 비극적 상실에 갇혀 있던 이들이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며 감싸 안을 때 어떻게 삶의 빛을 되찾고, 진정한 애도를 거쳐 굳건히 앞으로 나아가는지를 감동적으로 다루고 있다
‘안부’의 의미
소설에서 ‘안부’는 단순한 인사를 넘어, 당신이 어디에 있든 무사하기를 바라는 다정한 다짐이자 서로를 견디게 해주는 다정한 구원의 언어로 작동한다. 결국에는 자기 자신에게도 “너, 잘 지내고 있니?”라고 물어보는 것까지 포함한다.
작가 역시 제목의 의미를 긴 슬픔의 시간을 지나 밝고 환한 곳에서 다시 만나는 안부라는 의미로 설명했다.
[ 이 책이 말하고 싶은 것 ]
“사람은 혼자서 상처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다정한 관심과 안부를 통해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과거의 나를 현재의 기준으로 너무 가혹하게 판단하지 말자.”
어렸던 나는 어렸던 방식으로 최선을 다했고, 그때는 감당할 수 없었던 일을 지금의 내가 다시 바라볼 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눈부신 안부』는 결국 상실 → 죄책감 → 기억 → 관계 → 이해 → 자기 자신과의 화해 → 새로운 삶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인간의 마음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이 책을 꽤 깊이 있게 읽을 수 있었다.
‘상처를 극복한다’는 것보다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나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좋은 책인 것 같다.
[ 반전 ]
책의 마지막쯤에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 있어 약간 당황했다. 하지만 흥미로웠다.
책을 다 읽고 다시 앞에서 부터 다시 읽어보게 된 이유가 되었다.
앞으로 읽게 되실 분들을 위해 이 부분은 비밀로 덮어 둘까 한다.
[ 글을 마치며 ]
눈부신 안부는 2023년에 출간된 백수린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책이 마음에 들어 작가의 이력을 잠깐 찾아 보았다.
작품중에,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단편소설 <거짓말 연습>과,
2025년 최신작으로 중·노년의 외로움과 상실을 다룬 <봄밤의 모든 것>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 왔다.
두 책은 꼭 읽어 보고 싶다.
우연히 눈에 띄어 읽게 된 책이지만, 다 읽고 뜻밖의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 책속의 책 ]
루이제린저 <생의 한가운데>
[ 인터뷰 기사 ]
[인터뷰 -백수린 소설가] 나이를 먹는 게 상실의 연속 같지만, 그 안에도 아름다움과 사랑, 발견의 순간이 계속 찾아온다는 게 흥미로워요 / 문화잡지 쿨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