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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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부 첫 부분을 보면 유명한 문장이 있습니다. 

“나는 그대들에게 정신의 세 가지 변화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어떻게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낙타는 사자가 되며, 사자는 마침내 아이가 되는가를.”

많은 분들이 인용하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책을 읽었을 때에는 이 강렬한 문장조차 그 뜻의 깊이를 알지 못하고 흘려 읽어버렸었습니다. 도무지 책의 앞부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던 책이었는데 요즘 AI와 함께 고전 독서의 즐거움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더 깊이 있게 읽고 싶은 챕터들을 AI를 통해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바꾸어 읽고 있습니다. 그 즐거움을 공유해 보고자 합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부 – 세계 너머의 세계를 믿는 자들에 대하여

지금 눈앞에 있는 현실의 삶과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현실을 ‘환상’이나 ‘가치 없는 것’으로 치부하며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내세, 천국, 절대 진리)에만
의지하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

차라투스트라도 한때는 세계 너머의 세계를 믿는 모든 자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피안에 대한 망상을 품었다. 그때 세계란 고뇌하고 번민하는 신의 작품으로 보인 것이다.
과거의 차라투스트라 역시 내세(피안)를 믿는 나약함에 빠져 있었습니다. 당시의 그는 현실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번뇌에 빠진 신이 만든 가짜 세계’라고 치부해 버렸던 것입니다.

그때 세계는 내게 꿈이요, 신이 창작한 허구로 보였다. 불만족스러워하는 신의 눈앞에 피어오르는 알록달록한 연기와도 같았다.
그 당시 나에게 이 세상은 그저 한낱 꿈이자, 신이 꾸며 낸 가짜 이야기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마치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아 불만에 가득 찬 신의 눈앞에 잠시 피어올랐다 사라지는 알록달록한 연기처럼 덧없는 것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선과 악, 쾌락과 고통, 나와 너, 이것들이 나에게는 창조자의 눈앞에 피어오르는 알록달록한 연기로 생각되었다. 창조자는 자신으로부터 눈길을 돌리려 했고, 바로 그때 세계를 창조했던 것이다. 
착하게 사는 것과 나쁘게 사는 것, 기쁜 것과 괴로운 것, 너와 나를 편 가르는 것들… 그때는 이 모든 현실의 일들이 신이 심심풀이로 피워 올린 알록달록한 연기 속 환상 같았습니다. 신도 자기 삶이 너무 괴로우니까 그 고통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것입니다. 딴청을 피우며 시선을 돌리려고 만든 도피처가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세계였던 셈입니다.

자신의 고통으로부터 눈길을 돌리고 자기 자신을 망각하는 것, 고통받는 자에게는 그것이 바로 도취적 쾌락이다. 도취적인 쾌락과 자기 망각, 내게는 한때 세계가 그렇게 보였다.
자신이 겪고 있는 괴로움에서 시선을 돌려 자기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 삶이 고통스러운 사람에게는 그것만큼 짜릿하고 달콤한 쾌락이 없습니다. 한때 나에게 이 세상은, 그렇게 고통에 신음하는 존재가 현실을 잊고 취해버리기 위해 만들어 낸 ‘환각과 망각의 공간’처럼 보였습니다.

이 세계, 영원히 불완전한 세계, 영원한 모순의 모사이며 그나마도 불완전한 모사, 이러한 세계를 만든 불완전한 창조자에게 주어진 도취적 쾌락, 나에게는 한때 세계가 이렇게 보였다.
언제나 불완전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으로 가득 찬 이 세계는, 어떤 완벽한 본질을 어설프게 베껴 놓은 짝퉁(불완전한 모사)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만든 창조자 또한 불완전한 존재여서, 자신의 괴로움을 잊으려고 이 세계라는 환상에 취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한때 나에게 이 세상은 그저 그런 한심한 수준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세계 너머의 세계를 믿는 자들과 마찬가지로 일찍이 인간의 피안에 대한 망상을 가졌더랬다. 참으로 인간의 피안에 대해서였던가?
나 역시 과거에는 내세를 믿는 종교인들처럼 인간의 피안에 대한 환상을 가졌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내가 믿었던 그 피안이 정말 현실 너머에 존재하는 진짜 세계였는가? 아니면 그저 인간의 나약함이 지어낸 착각에 불과했던 것인가?

아, 형제들이여, 내가 꾸며 낸 이 신은 다른 모든 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작품이자 인간의 망상이었다!
아, 동료들이여! 깨닫고 보니 내가 섬기던 신 역시 인간의 나약함이 빚어낸 작품이자 허상일 뿐이었습니다.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 신은 인간이었고, 그나마 인과 자아의 초라한 한 조각일 뿐이었다. 그것은, 이 유령은 참으로 나 자신의 타고 남은 재와 열기로부터 내게 온 것이었을 뿐! 피안으로부터 내게 온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섬기는 신은 거룩한 존재가 아니라 인간 자아의 초라한 단면일 뿐입니다. 그 유령 같은 환상은 내세(피안)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고통에 타버린 내 마음의 상처와 열망이 만들어 낸 내면의 착각이었습니다.

형제들이여, 그러고 나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나는 자신을, 고통받는 나 자신을 극복한 것이다. 나는 자신의 타고 남은 재를 산으로 날라 가서 더욱 밝은 불꽃으로 만들어 냈다. 그런데 보라! 그때 유령들은 나를 피해 달아나지 않았던가!
나의 형제들이여, 그러고 나서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나는 마침내 괴로워하고 신음하던 나 자신을 이겨내고 극복했습니다! 고통에 타버린 내 마음의 재(슬픔과 원망)를 고독한 산으로 가지고 올라가, 오히려 삶을 향한 더 뜨겁고 밝은 불꽃으로 태워버린 것입니다. 그러자 보십시오! 내가 강해지자마자, 나를 괴롭히던 그 신과 내세라는 가짜 유령들이 겁을 먹고 내 앞에서 모두 달아나 버리지 않았습니까!

이러한 유령을 믿는다는 것, 이제 그것은 병에서 치유되고 있는 나에게는 고뇌가 되고 고통이 되리라. 이제 나에게는 고뇌요, 굴욕이 되리라. 그러므로 나는 세계 너머의 세계를 믿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제 신이나 저세상 같은 환상(유령)을 다시 믿는다는 것은, 나약함이라는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지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는 또 다른 괴로움이자 고통이 될 뿐입니다. 그것은 이제 나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이자 굴욕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직도 현실을 도피해 ‘저 세상(천국)’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고뇌와 무능함. 이것이 그 모든 세계 너머의 세계를 꾸며 냈다. 더없이 괴로워하는 자만이 경험할 수 있는 저 짧은 행복의 망상. 그것이 세계 너머의 세계였다. 
인간의 깊은 괴로움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함, 바로 이것들이 현실 너머의 가짜 세계(천국이나 내세)를 지어내게 만들었습니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자들만이 비참한 현실을 잊기 위해 잠시 꿈꾸는 짧은 행복의 착각, 그것이 바로 사람들이 말하는 ‘저세상’의 진짜 정체였습니다.

 단숨에 목숨을 걸고 뛰어올라 궁극에 도달하려는 데서 오는 피로감,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못하는 저 가련하고 무지한 피로감, 이것이 모든 신들과 세계 너머의 세계를 꾸며 낸 것이다.
현실적 도피를 통해 단번에 절대적인 구원에 도달하려는 조급함은 결국 극도의 피로를 낳습니다. 더 이상 현실에서 아무것도 도모할 수 없을 만큼 완전히 무기력해진 인간의 가련한 피로감이야말로, 모든 신과 내세라는 허상을 창조해 낸 근원입니다.

형제들이여! 내 말을 믿으라! 몸에 절망한 자는 다름 아닌 몸이었다. 그 몸이 무지몽매한 정신의 손가락으로 궁극의 벽을 더듬은 것이다.
동지들이여, 제 말을 믿으십시오. 몸을 부정하고 절망하는 것은 사실 정신이 아니라 몸 자신입니다. 쇠약해진 몸이 얼떨결에 정신이라는 도구를 빌려, 넘어설 수 없는 한계(죽음이나 고통)를 지푸라기 잡듯 더듬고 있을 뿐입니다.

형제들이여! 내 말을 믿으라! 몸에 절망한 자는 다름 아닌 몸이었다. 그 몸이 무지몽매한 정신의 손가락으로 궁극의 벽을 더듬은 것이다.
동지들이여, 제 말을 믿으십시오! 몸을 부정하고 절망하는 것은 사실 정신이 아니라 몸 자신입니다. 쇠약해진 몸이 얼떨결에 정신이라는 도구를 빌려, 넘어설 수 없는 한계(죽음이나 고통)를 지푸라기 잡듯 더듬고 있을 뿐입니다.

형제들이여! 내 말을 믿으라! 이 대지에 절망한 것은 다름 아닌 몸이었다. 존재의 뱃속이 하는 말을 들은 것은 바로 몸이었다.
동지들이여, 제 말을 믿으십시오! 세상에 실망하고 절망한 주체는 무슨 거창한 영혼이나 정신이 아니라 바로 우리 육체입니다. 삶의 깊은 본능과 내면의 소리를 가장 먼저 알아채고 반응한 것 역시 바로 이 ‘몸’이었습니다.

그때 몸은 머리를 가지고서, 물론 머리만으로는 아니었지만, 궁극의 벽을 뚫고 저 세계로 넘어가고자 했다.
그 당시 우리 몸은 지성(머리)을 활용해 현실의 한계를 뚫고 저 너머의 초월적인 세계(신·내세)로 넘어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저 세계는 인간 앞에 잘 감추어져 있다. 저 탈인간화된 비인간적 세계는 말하자면 천상의 무이다. 그리고 존재의 뱃속은 인간의 모습으로가 아니라면 결코 인간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초월 세계’는 인간이 도달할 수 없도록 숨겨져 있으며, 사실상 아무것도 없는 빈 껍데기(무)에 불과합니다. 세상의 진실(존재의 소리)은 오직 ‘인간의 경험과 감각’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참으로 모든 존재는 증명하기 어렵고 말을 시키기도 어렵다. 그대 형제들이여, 나에게 말해 다오. 모든 사물들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이 가장 잘 증명된 것 아닌가?
만물의 진리를 증명하거나 설명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형제들이여, 가장 경이롭고 확실하게 증명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다. 이 자아와 자아의 모순과 혼란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가장 정직하게 말한다. 그리고 창조하고 의욕하고 평가하는 이 자아야말로 사물들의 척도이자 가치인 것이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자아)’입니다. 때로는 모순되고 혼란스러워하는 이 자아야말로 삶에 대해 가장 정직하게 말해 줍니다. 스스로 끊임없이 고민하고, 무언가를 원하고, 가치를 매기는 바로 이 ‘나’라는 존재가 모든 것의 진정한 기준이자 가치입니다.

이 가장 정직한 존재인 자아. 그것은 몸에 대해 말하며 몸을 원한다. 이 자아는 꾸며 대고 몽상하고 부러진 날개로 피덕거릴 때도 몸을 원한다.
가장 정직한 존재인 자아는 언제나 몸을 말하며, 여전히 몸을 필요로 합니다. 자아가 거짓을 말하고 헛된 환상을 품으며 부러진 날개처럼 약해져 방황할 때조차, 본능적으로 갈구하는 것은 결국 ‘나의 몸’입니다.

자아는 점점 더 정직하게 말하는 것을 배운다. 그리고 점점 정직해질수록 자아는 몸과 대지를 찬양하는 말을 점점 더 많이 찾아내고 더 많은 경의를 표한다.
자아는 시간이 흐를수록 진실하게 말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리고 자아가 진실해질수록, 허황된 생각이 아닌 살아있는 ‘몸’과 ‘현실의 삶’을 칭찬하고 존중하는 말을 더 많이 하게 됩니다.

나의 자아는 내게 새로운 긍지를 가르쳤다. 그리고 나는 그 긍지를 인간들에게 가르친다. 더 이상 천상의 일들의 모래밭에 머리를 감추지 않고 자유롭게 고개를 쳐드는 긍지를 가르친다. 대지에 의미를 부여하는 대지의 머리를!
나의 자아는 나에게 새로운 자부심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자부심을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이제 타조처럼 모래밭에 머리를 묻고 현실을 피하거나 헛된 신념에만 매달리지 마십시오.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현실과 세상에 진짜 의미를 만들어 가는 지혜로운 인간이 되라는 자부심입니다.

나는 인간에게 새로운 의지를 가르친다. 인간이 곧장 걸어온 이 길을 원하고 이 길을 받아들이며, 병든 자와 죽어 가는 사람처럼 그 길에서 벗어나 몰래 달아나지 말라고 가르친다!
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태도를 가르칩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걸어온 인간의 길을 피하지 않고 당당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병자나 죽어가는 사람처럼 삶이 버겁다고 해서 슬그머니 도망치지 말라는 뜻입니다.

병든 자와 죽어 가는 자들이야말로 몸과 대지를 경멸하고 하늘나라와 구원의 핏방울을 꾸며 낸 자들이었다. 그러나 이 달콤하고 음울한 독조차 그들은 몸과 대지로부터 만들어 낸 것이다!
자신의 몸과 현실 세계를 무시하고 천국이나 구원 같은 환상을 만들어 낸 이들은, 사실 현실에서 병들고 죽어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도피처로 만든 이 달콤하고 어두운 환상(독)조차, 결국 그들 자신의 몸과 현실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불행으로부터 달아나려 했으나 별들은 너무도 아득한 곳에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탄식했다. “다른 존재와 다른 행복으로 기어들 수 있는 천상의 길이 있기만 하다면!” 그리하여 그들은 샛길과 핏빛 음료를 만들어 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불행과 고통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구원이나 희망은 너무나 아득하고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세상이나 다른 행복으로 도망칠 수 있는 천국의 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탄식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현실을 빠져나가는 헛된 샛길과 환상적인 의식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 배은망덕한 자들은 이제 그들의 몸과 이 대지로부터 벗어났다는 망상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그 탈주의 경력과 희열조차 누구 덕분이란 말인가! 바로 그들의 몸과 이 대지가 아니라면!
이 은혜를 모르는 이들은 자신들이 몸과 현실 세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느낀 도피의 경험과 그 속에서 얻은 기쁨조차 다 누구 덕분이었겠습니까? 결국 자신들의 몸과 현실이 없었다면 결코 느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차라투스트라는 병든 자들에게 상냥하다. 참으로 그는 병든 자들 나름대로의 위안과 배은망덕에도 화를 내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병에서 회복되고 극복하는 자가 되어 보다 건강한 몸을 가지기를 바랄 뿐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삶에 상처받고 병든 이들에게 너그럽습니다. 그들이 자기 나름대로 위안을 찾으려 어리석게 굴거나 은혜를 몰라보더라도 화를 내지 않습니다. 그저 그들이 병을 털어내고 약함을 극복하여, 더 건강한 몸과 마음을 되찾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입니다.

또한 차라투스트라는 병에서 회복되고 있는 자가 지난날의 망상에 연연하고 밤중에 몰래 그의 신의 무덤으로 기어가더라도 화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자의 눈물조차 내게는 여전히 병이며 병든 몸으로 보인다.
차라투스트라는 오랜 환상에서 벗어나 건강을 되찾아 가는 사람이 과거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밤중에 몰래 자신이 섬기던 신의 무덤을 찾아가 울더라도 화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가 흘리는 눈물조차 나에게는 여전히 완전히 낫지 않은 몸과 마음의 ‘병’으로 보일 뿐입니다.

꾸며 대고 신을 갈망하는 자들 가운데에는 언제나 병든 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인식하는 자를 맹렬하게 미워하며, 덕 가운데서 가장 새로운 덕인 정직을 더없이 미워한다.
거짓을 꾸며 내고 신을 간절히 찾는 사람들 중에는 언제나 삶과 몸이 병든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진실을 알아채고 깨달으려는 사람을 매우 미워하며,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정직함’이라는 최고의 덕목을 가장 싫어합니다.

그들은 언제나 까마득한 옛날을 뒤돌아본다. 당시만 해도 망상과 신앙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광기 어린 이성은 신과 닮은 것으로 여겨졌으며, 의심은 죄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언제나 까마득한 옛날을 그리워하며 돌아봅니다. 그 시절에는 환상과 맹신이 지금과는 다르게 귀하게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광기 어린 생각조차 신의 뜻처럼 존중받았고, 의심을 품는 것은 그저 죄로 여겨졌던 시대였습니다.

나는 신과 닮은 이러한 자들을 너무도 잘 안다. 그들은 사람들이 자기들을 믿기를 바라며 의심이 죄가 되기를 바란다. 또한 나는 그들 자신이 가장 믿는 것이 무엇인가를 너무도 잘 안다.
나는 신처럼 굴며 사람들을 조종하려는 이들의 속셈을 너무 잘 압니다. 그들은 남들이 자신을 무조건 믿어주길 바라며,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것을 죄처럼 몰아가려 합니다. 하지만 정작 그들 스스로가 속으로 가장 의지하고 믿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참으로 그들이 가장 믿는 것은 세계 너머의 세계와 구제의 핏방울이 아니라 바로 그들의 몸이다. 말하자면 그들 자신의 몸이 그들에게는 물(物) 자체이다.
사실 그들이 가장 의지하고 믿는 것은 저 너머의 세상이나 구원의 피가 아니라, 바로 그들 자신의 몸입니다. 말하자면 자기 자신의 몸이야말로 그들에게 가장 확실하고 근본적인 진실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몸이란 병든 것이며,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그리하여 죽음의 설교자에게 귀를 기울이고, 스스로 세계 너머의 세계를 설교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자신의 몸이란 그저 병들고 고통스러운 것일 뿐이기에, 어떻게든 그 몸에서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삶을 포기하라고 유혹하는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들마저 다른 이들에게 헛된 초월 세계를 설교하게 되는 것입니다.

형제들이여, 차라리 건강한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보다 정직하고 보다 순수한 소리에.
동지들이여, 헛된 환상에 속지 말고 차라리 건강한 몸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 소리야말로 훨씬 더 정직하고 깨끗한 진실입니다.

건강한 몸, 완전하고 반듯한 몸은 정직하고 보다 순수하게 말한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몸이 대지의 뜻을 전해 준다.
건강하고 온전하게 살아있는 몸은 그 어떤 헛된 관념보다 정직하고 순수하게 진실을 말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건강한 몸이야말로 우리가 딛고 선 현실과 자연의 참된 뜻을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 너머의 세계를 믿는 자들에 대하여]  –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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